"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두 번째 산'…'개인주의' 넘어 '관계주의' 역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개인주의'가 대세인 시대다. 너나없이 자아의 담장을 두껍게, 그리고 높이 쌓다 보니 그 너머의 '관계주의'는 닿기 힘든 딴세상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나는 자유다'는 문화 속에 개인들은 외로워졌다. 서로에게서 애착을 느끼기가 무척 어렵다. 그 결과로 공동체는 나날이 해체되고 개인들 사이의 결속은 허무하게 끊어진다. 외로움이 확산하고 일상화하는 건 당연하다.
잃어버렸던 공동체를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개인주의를 넘어 관계주의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건강한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승화시킬 때 공동체와 관계주의가 가능해진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첫 번째 산이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스스로 얻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저서 '두 번째 산'에서 "우리는 고통의 시기를 겪으며 인생의 태도를 다시 정립한다"라고 역설한다. 삶의 고통을 딛고 다시 시작하려면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근래 들어 개인주의 가치가 맹위를 떨친 결과, 공동체는 급격히 해체되고 개인들 사이의 결속은 끊어지며 외로움이 확산했다. '사회적 고립'으로 부를 수 있는 이런 상황은 삶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키고 자기 발견과 성장 또한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문화적 패러다임의 무게 중심을 개인주의라는 첫 번째 산에서 관계주의라는 두 번째 산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다.
첫 번째 산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며, 재능을 연마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세상에 남기려 노력한다. 많은 시간을 들여 평판 관리에 힘쓰며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자신을 자기의 참모습이라 여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좋은 집, 멋진 휴가, 맛있는 음식, 좋은 친구들처럼 자기 나름의 성취를 했지만 내적 공허감과 고통스러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두 번째 산이란다. 저자는 두 번째 산에 오른다는 건 첫 번째 산의 계곡에서 겪은 공허와 고통의 낡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나는 '발전과 성장의 계기'라고 말한다.
고통이 자기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똑똑히 바라볼 때, 그렇게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성공이 아닌 성장을, 물질적 행복이 아닌 정신적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고뇌의 계곡에서 사막의 정화를 거쳐 통찰의 산봉우리에 이르는 것이다.
첫 번째 산에서 자아의 욕구를 채우고 주류 문화를 따랐다면, 두 번째 산에서는 이런 욕구와 문화에 반기를 든다. 자기 욕구의 수준을 한층 높여 진정으로 바랄 가치가 있는 것들을 바라기 시작한다. 세상이 이들에게 독립성, 개인적 자유, 세속적 성공을 바랄 것을 요구할지라도 이들은 상호 의존, 이타적 헌신, 정신적 기쁨으로 시선을 돌린다.
저자는 "우리는 인간관계에 의해 형성되고, 인간관계에 의해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또 인간관계를 동경한다는 진실을 명료하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인생이란 '외로운 여정'이 아닌 '함께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어른으로서 사는 최고의 인생은 직업에, 가족에, 철학이나 신앙에, 공동체에 헌신하고 그 헌신을 계속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어른으로 사는 인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생은 서로에게 조건 없는 선물을 주는 데 있다."
"계약은 '거래'이다. 약속은 '관계'이다. 계약은 이해관계가 걸린 것이고 약속은 정체성이 걸린 것이다. 너와 내가 합쳐져 '우리'가 되는 문제다. 거래가 '이득'을 가져다주고 약속이 '변화'를 가져다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의 견해를 요약하자면, 개인주의를 넘어 관계주의로 가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잃어버린 공동체의 회복이다. 관계주의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중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가 개인을 모든 연대와 결속에서 분리한다면, 집단주의는 개인을 집단 속에 묻어 아예 지워 버린다. 그러나 관계주의는 각 개인을 따뜻한 헌신의 두텁고 매혹적인 관계망 속에 존재하는 연결점이다.
저자는 "관계주의는 '좋은 인생'과 '좋은 사회'를 잇는 유일한 연결점"이라며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는 동시에 일어난다. 우리가 손을 뻗어서 공동체 건설에 힘을 보탤 때 이 행동은 우리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거듭 힘주어 말한다.
이경식 옮김. 부키 펴냄. 600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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